구천 이백 구십 사 킬로미터.
이 숫자는 바로 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까지 이동한 거리였다. 그리고 한국프로농구(KBL) LG세이커스의 슈팅가드 이관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기도 했다.
나는 “관희야! 너보러 미국에서 9294km 날아왔어”라는 문구가 적힌 응원피켓을 손에 들고 경기 시작 90분 전 신나게 고양체육관에 도착했다.

내가 농구의 오랜 팬으로서 농구에 대해 잘 아는 건 사실이지만, 단순히 경기 소리에 파묻혀 현장감있는 게임을 즐기고 싶어서 그곳에 갔던 것일까? 나중엔 그렇게 됐지만, 처음엔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챔피언 반지를 노리는 35살의 베테랑 선수이자 유명인사인 이관희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간 것이었다.
세이커스 팀 벤치에서 여섯 줄 떨어진 곳에 앉은 나는 우선 자연스레 이관희의 자리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유명한 솔로지옥의 ‘나쁜 남자’를 보게 되자, 여러 생각과 질문들이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 그는 왜 0 번을 달고 있을까? 보통 등 번호 0 번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
- 그는 실물이 더 잘생겼다.
- 그는 쉽게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 그는 친근해보였다.
- 그의 경기 전 드리블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테픈 커리를 떠올리게 했다.
- 헤어스타일은 왜 저렇게 했을까? 마치 군인으로 복무 중인 내 아들을 떠올리게 했다.
사색에 잠겨있던 나는, 내가 들고 있던 피켓이 세이커스 직원 및 선수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는 것을 옆 사람의 귀띔으로 알게 되었다. 이관희 역시 다른 선수가 알려주어 내 피켓을 보게 되었고,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같이 손을 흔들었고, 그 순간 만족감을 느꼈다. 내 피켓은 그의 관심을 끌었고, 충분히 인정받았다. 이제 피켓을 내릴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관희가 내 구역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제발 나에게 오지 않기를…립스틱도 안 발랐단 말야.
하지만 눈앞에서 그가 같이 사진을 찍고 싶냐고 말한 순간, 나는 내가 어떻게 보이는 지는 잊은 채 ‘네!!’라고 기쁘게 소리를 질렀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함께 왔던 사람은 선수팀의 통역가였는데, 이관희가 나와 영어로 대화했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은 후에 이관희는 내게 어디서 왔는 지,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는 지, 경기장엔 왜 왔는 지를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당신 때문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스테픈 커리의 저지를 입었던 걸 사과하며 ”저의 최애 농구 선수는 이제 스테픈 커리가 아니라 당신이에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덕분에 그는 즐거운 미소를 띄우며 다시 내려갔다.
나는 내내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고, 마치 디즈니랜드에 있는 것처럼 황홀한 기분이었다! 아니, 디즈니랜드보다 더 좋았다! 나는 정말 환영받았다고 느꼈으며, 다시 13살 소녀로 돌아간 것만 같은 들뜬 기분이었다. 나의 작은 응원 피켓이 이토록 강한 인상을 남겨, 뜻밖에 이관희의 다정한 반응까지 보게 만들 줄은 몰랐다.

그 후 세이커스 선수들은 3연승을 위해 경기장으로 돌아갔고, 이관희는 상대편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으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선수들이 대기실로 돌아갈 때 그는 나를 돌아보며 작별 인사를 보냈다. 그 모습에 나는 그가 참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감탄하였다. 나를 기억해준 것에 깜짝 놀랐던, 또 하나의 예상치 못 한 행동이었다. 이 순간은 내가 그와 나눈 소통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이 되기도 했다.
이관희는 그 날 경기에서 10점을 득점했을 뿐 아니라 내 마음의 점수도 얻어갔다. 그는 나를 진정한 팬이 되게 만든 것이다.
Korean Translation by Sanghyun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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